AI가 짜준 등산 코스, 따라갔다 길 헤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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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혼자 산에 다녀왔습니다. 평소 같으면 등산 앱에서 남들이 많이 간 코스를 그대로 따라갔을 텐데, 이번에는 일부러 AI에게 코스를 짜달라고 해봤습니다. “초보도 갈 수 있는, 세 시간 안쪽의 원점회귀 코스”라는 조건만 주고요. 결과부터 말하면 산 중턱에서 한 이십 분쯤 같은 자리를 맴돌았고, 하산은 계획보다 한 시간 가까이 늦어졌습니다. 다친 데는 없었지만 해가 기울기 시작하던 그 이십 분은 체감상 한 시간쯤 되는 것 같았어요.

AI가 틀렸다고 탓하려고 쓰는 글은 아닙니다. 돌아와서 대화 기록을 다시 읽어보니 제가 물어본 방식에도 구멍이 꽤 많았거든요. 다음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그리고 비슷하게 AI로 산행 계획을 세워보려는 분들이 참고하시라고 그날 있었던 일을 정리해 둡니다.

AI가 짜준 코스는 그럴듯했다

처음 받은 답은 정말 그럴듯했습니다. 들머리, 중간 갈림길 두 곳, 정상 직전 전망 바위, 그리고 다른 능선으로 내려오는 하산길까지 순서대로 적혀 있었고, 구간마다 예상 소요 시간도 붙어 있었어요. 합계는 2시간 40분. 물은 1리터면 충분하고, 간식은 가볍게 챙기라는 조언까지 있었습니다. 읽는 순간 “이거면 되겠다” 싶어서 따로 지도를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첫 번째 실수였습니다.

문장이 매끄럽고 구성이 깔끔하면 내용도 맞을 거라고 믿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갈림길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나오니 더 그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그 이름이 이정표에 적힌 이름과 달랐습니다.

현장에서 어긋난 세 가지

이정표 이름이 달랐다

AI가 알려준 “OO 삼거리”는 실제 이정표에 없었습니다. 대신 근처 봉우리 이름과 거리 표시만 있었어요. 나중에 찾아보니 AI가 말한 이름은 등산객들 사이에서 부르는 별칭에 가까웠던 모양입니다. 문제는 그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판단할 근거가 사라졌다는 거였죠. 휴대폰 지도를 켰는데 산속이라 위치가 자꾸 튀어서, 결국 왔던 길을 두 번 오르내리고 나서야 맞는 방향을 찾았습니다.

하산 예정 구간이 통제 중이었다

정상에서 내려가려던 능선길 입구에는 출입 통제 안내판과 줄이 쳐져 있었습니다. 탐방로 정비 때문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AI는 학습한 시점의 정보로 답할 뿐이니 이런 일시적인 통제를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올라온 길로 되돌아 내려왔는데, 원점회귀라 다행이지 다른 마을로 내려가는 코스였다면 차편부터 다시 고민해야 했을 겁니다.

예상 시간이 너무 낙관적이었다

헤맨 시간을 빼고 계산해도 실제로 걸린 시간은 3시간 20분 정도였습니다. AI가 말한 2시간 40분은 아마 꾸준한 속도로 쉬지 않고 걷는 사람 기준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사진도 찍고, 계단 구간에서 숨도 고르고, 정상에서 김밥도 먹었으니까요. 출발이 오후 1시였는데 하산을 마친 건 5시가 넘어서였고, 10월 중순이라 숲길 안쪽은 벌써 어둑어둑했습니다.

돌아와서 다시 물어보니 답이 달라졌다

집에 와서 같은 AI에게 이번엔 조건을 훨씬 자세하게 줘봤습니다. “등산 경력 2년, 평지 걷기 속도 보통, 오르막에서는 남들보다 느린 편, 오후 1시 출발, 해 지기 한 시간 전에는 하산 완료, 이정표에 실제 표기되는 지명 위주로 안내” 같은 식으로요. 그랬더니 답이 꽤 달라졌습니다. 예상 시간을 범위로 주면서 휴식 시간을 따로 잡았고, 일몰 시각을 확인하라는 말과 함께 국립공원이나 지자체의 탐방로 통제 정보를 출발 전에 꼭 보라고 먼저 짚어주더군요. 갈림길 설명에도 “현장 이정표 표기와 다를 수 있다”는 단서가 붙었습니다.

결국 처음 답이 나빴던 건 AI가 무능해서라기보다, 제가 준 정보가 너무 적어서 가장 평균적인 사람을 가정하고 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평균적인 사람의 속도, 평균적인 날의 탐방로 상태, 등산객들이 흔히 부르는 이름. 그 평균이 그날의 저와는 맞지 않았던 거죠.

다음 산행부터 바꾼 것

AI를 안 쓰겠다는 결론은 아닙니다. 코스 후보를 여러 개 빠르게 비교하거나, 구간별 난이도를 대략 감 잡는 데는 여전히 편했어요. 다만 AI의 답은 “초안”으로만 쓰고, 출발 전에 몇 가지는 반드시 사람 손으로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다른 산을 이 방식으로 다녀왔는데, 예상 시간과 실제 시간 차이가 15분 안쪽이었습니다.

  • 질문할 때 내 페이스, 출발 시각, 하산 마감 시각을 구체적으로 적는다
  • AI가 준 코스를 등산 앱의 실제 GPX 경로나 지도와 한 번 겹쳐 본다
  • 국립공원·지자체 홈페이지에서 당일 탐방로 통제 여부를 확인한다
  • 일몰 시각을 확인하고, 그 한 시간 전을 하산 마감으로 잡는다
  • 보조배터리와 오프라인 지도를 챙긴다

산에서는 작은 착오가 생각보다 크게 불어나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AI에게 뭔가를 물을 때 “이 답이 평균적인 누군가를 가정하고 있지 않나”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등산뿐 아니라 여행 일정이나 운동 계획을 짤 때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