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냉장고 파먹기 레시피, 일주일 써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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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열 때마다 뭔가 애매하게 남아있는 재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애호박 반 토막, 두부 한 모, 달걀 네 개, 시들기 직전인 파 한 줌. 하나씩 보면 다 요리에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저녁 메뉴를 정하려고 하면 머릿속이 하얘져서 결국 배달앱을 켜는 식이었다. 9월 15일 월요일부터 21일 일요일까지 일주일 동안, 그 습관을 좀 고쳐보려고 냉장고 속 재료 사진을 찍어서 AI한테 레시피를 물어보는 걸 시도해봤다.

냉장고 파먹기가 매번 실패했던 이유

돌이켜보면 문제는 재료가 없어서가 아니라 조합을 생각해내는 게 귀찮아서였다. 레시피 사이트를 검색하면 광고 배너 사이에서 스크롤을 몇 번씩 내려야 하고, 그마저도 재료 하나가 없으면 처음부터 다시 검색해야 했다. 그래서 이번엔 순서를 바꿔서, 냉장고를 열고 사진부터 찍은 다음 챗GPT에 그 사진을 올리고 “이 재료들로 오늘 저녁에 뭘 만들 수 있을까, 최대한 추가로 사지 않는 선에서”라고 물어보는 방식으로 일주일을 시작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실제로 있었던 일

월요일 저녁은 순조로웠다. 애호박, 두부, 달걀로 만들 수 있는 두부애호박전과 달걀찜을 추천받았는데 재료가 딱 맞아서 별도로 살 게 없었다. 그런데 화요일이 문제였다. AI가 자신 있게 추천한 메뉴에 굴소스가 필요했는데, 우리 집엔 굴소스가 없었다. 대체 재료를 다시 물어보고, 그다음엔 그 대체 재료도 없어서 또 물어보고를 세 번쯤 반복하다가 결국 그냥 냉장고에 있던 김치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그 왔다 갔다 하던 몇십 분이 체감상 한 시간처럼 느껴졌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수요일부터는 요령이 좀 생겼다. 사진만 던지지 않고 “집에 없는 조미료는 간장, 고추장, 참기름, 소금, 후추뿐이라고 가정하고 추천해줘”라고 미리 제약을 걸었더니 화요일 같은 삽질이 확 줄었다. 목요일엔 냉동실에 오래 방치돼 있던 다진 마늘과 대파 뿌리로 육수를 내는 법을 물어봤는데, 이건 예상외로 꽤 쓸만한 팁이었다. 버리려고 했던 대파 뿌리를 씻어서 육수에 넣으면 은근히 감칠맛이 난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금요일은 살짝 실패한 날이었다. AI가 추천한 레시피대로 만들었는데 간이 너무 세게 나왔다. 나중에 다시 물어보니 계량 단위를 “한 큰술”이 아니라 “약간”으로 뭉뚱그려 알려준 부분이 있었고, 그걸 내가 눈대중으로 넉넉하게 넣은 게 화근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장을 봐야 하는 날이라 오히려 AI한테 “냉장고를 다 비운다는 가정으로 이번 주 장보기 목록을 재료 활용도 순으로 짜달라”고 부탁했는데, 이건 레시피 추천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일주일 해보고 남은 생각

일주일 동안 배달을 시킨 건 화요일 대체 재료를 찾다가 지쳐서 시킨 야식 한 번뿐이었다. 예전 같으면 최소 서너 번은 시켰을 텐데, 그것만으로도 체감 효과는 있었다. 다만 AI가 재료의 신선도나 정확한 양을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사진 한 장으로 추측한다는 한계는 계속 느껴졌다. 두부가 유통기한이 지난 건지, 파가 아직 쓸 만한 상태인지는 결국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 부분이었고, 계량도 요리 초보라면 화요일이나 금요일처럼 한 번쯤은 삐끗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레시피를 검색하느라 쓰던 시간, 그리고 재료 하나 없어서 처음부터 다시 찾아보던 그 답답함이 확실히 줄어든 건 사실이다. 특히 조미료 제약 조건을 미리 걸어두는 방식은 다음 주에도 계속 써볼 생각이고, 장보기 목록을 재료 활용도 순으로 짜는 것도 꽤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 매주 일요일 루틴으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같이 사는 사람한테도 이 방법을 얘기했더니 처음엔 “그냥 배달시키는 게 빠르지 않냐”고 시큰둥했는데, 목요일에 대파 뿌리 육수 얘기를 듣고는 태도가 좀 바뀌었다. 버리던 재료로 육수를 냈다는 게 은근히 신기했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그 전까지는 대파 뿌리는 무조건 음식물 쓰레기통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식으로 몰랐던 활용법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생각보다 쏠쏠했다.

다음 주에 이렇게 해보려고 한다

이번 주 시행착오를 정리하면 이렇다.

  • 사진만 던지지 말고 집에 있는 조미료 목록을 미리 알려주기
  • 계량은 “약간”, “적당히” 같은 표현이 나오면 다시 구체적인 수치로 물어보기
  • 재료 유통기한과 신선도는 AI가 아니라 직접 확인하기
  • 일요일엔 레시피 대신 장보기 목록을 재료 활용도 순으로 짜달라고 부탁하기

거창한 식단 관리 앱을 새로 깔지 않아도, 이미 쓰던 AI 채팅창에 냉장고 사진 한 장 올리는 것만으로 저녁 메뉴 고민이 꽤 줄어든다는 걸 확인한 일주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