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쇼핑·예약 에이전트 직접 써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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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정수기 필터를 갈아야 하는데 예전에 썼던 제품명이 기억이 안 나서 한참 헤맸습니다. 서랍을 뒤져 영수증을 찾다가 문득 요즘 화제인 AI 에이전트 브라우저를 한번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쇼핑몰 앱을 켜고 검색창에 이것저것 입력해가며 직접 비교했을 텐데, 이번엔 “정수기 필터 재구매하고 싶은데 예전에 산 거랑 똑같은 걸로 찾아서 장바구니에 담아줘” 정도로만 시켜봤습니다. 그렇게 반나절 정도 이것저것 써보고 나니, 편한 부분과 아직은 못 미더운 부분이 꽤 뚜렷하게 갈렸습니다.

온라인 장보기를 에이전트에게 맡겨봤다

일단 정수기 필터는 생각보다 수월했습니다. 주문 내역에서 예전 구매 기록을 스스로 찾아내더니 같은 브랜드, 같은 규격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아뒀고, 결제 직전 화면까지만 진행하고 멈춰서 저한테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그 지점에서 좀 놀랐던 게, 제가 따로 “결제는 네가 하지 말고 나한테 물어봐”라고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멈춘 겁니다. 다만 두 번째로 시켜본 게 문제였는데, 아이 실내화를 검색해달라고 했더니 사이즈를 지난번 주문 기록에서 그대로 가져오는 바람에 발이 이미 큰 걸 감안하지 못한 사이즈를 담아놨습니다. 결국 사이즈는 제가 직접 다시 입력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편해도 아이 발 크기가 몇 달 새 바뀌었다는 것까지는 알 리가 없으니, 이런 디테일은 여전히 사람이 챙겨야겠다 싶었습니다.

식당 예약도 시켜봤는데

장보기가 그럭저럭 되길래 욕심을 내서 다음 주 부모님 생신 저녁 식당 예약도 맡겨봤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 저녁 7시쯤, 4명이 편하게 갈 수 있는 한식당으로 예약해줘”라고 했더니, 후보 몇 곳을 찾아서 평점과 가격대를 정리해 보여주긴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예약 페이지로 넘어가서는 두 곳 다 실패했습니다. 한 곳은 로그인 인증 단계에서 막혔고, 다른 한 곳은 예약 시스템 자체가 외부 사이트로 연결되는 구조라 에이전트가 인식을 못 하고 같은 화면만 계속 새로고침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전화로 직접 예약했는데, 어차피 사장님이랑 “생신이라 케이크도 부탁드려요” 하고 몇 마디 나누는 게 더 빠르고 마음도 편했습니다. 후기를 찾아보니 저 말고도 예약 단계에서 막혔다는 사람이 꽤 있었는데, 국내 예약 시스템들이 아직 이런 에이전트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지 않은 탓이 큰 것 같습니다.

편했던 점과 아직은 못미더운 점

하루 종일 써보고 든 생각은, 반복적이고 패턴이 뻔한 일은 확실히 맡길 만하다는 겁니다. 매번 똑같이 사는 소모품, 정기적으로 시키는 배달 같은 건 시간을 꽤 아껴줍니다. 반면 그때그때 사정이 달라지는 일, 그러니까 사이즈가 바뀌었다거나 특정 날짜에 자리가 있는지 전화로 물어봐야 하는 예약 같은 건 아직 사람이 개입해야 하는 구간이 분명히 남아 있었습니다. 결제 직전에 멈춰서 확인받는 방식은 안심이 됐지만, 카드 정보나 배송지 같은 걸 에이전트가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조금 찜찜해서, 저는 결제 수단은 일부러 한도가 낮은 카드로 따로 등록해뒀습니다. 완전히 손을 놓고 맡기기보다는, 반복 업무는 넘기고 중요한 결정은 마지막에 제가 확인하는 식으로 쓰는 게 지금 시점에서는 제일 현실적인 것 같습니다.

비용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구독 요금제에 딸려 있는 기능이라 추가 비용은 안 들었지만, 만약 이것만 따로 결제해야 했다면 하루 종일 장보기와 예약 두 가지 시켜본 것치고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클 뻔했습니다. 그리고 브라우저가 화면을 스스로 클릭하고 스크롤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신기하면서도 묘하게 불안한 기분이 들었는데, 중간에 엉뚱한 배너 광고를 잘못 눌러서 다른 탭이 열리는 걸 보고는 자리를 뜨지 않고 옆에서 계속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전히 사람 손을 떠난 자동화라기보다는, 옆에서 지켜보며 필요할 때만 개입하는 조수 정도로 여기는 게 지금은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직접 써보면서 정리된 생각을 짧게 남겨봅니다.

  • 반복 구매·정기 주문처럼 패턴이 정해진 일에는 에이전트가 확실히 시간을 아껴줍니다.
  • 결제 직전 확인 단계가 있는지, 결제 수단을 별도로 관리할 수 있는지는 미리 챙겨보는 게 좋습니다.
  • 예약처럼 실시간으로 상황이 바뀌는 일은 아직 전화나 직접 처리가 더 빠를 때가 많습니다.